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진상 논란
일본의 귀국선 '우키시마호'가 1945년 8월 24일 의문의 폭침으로 참혹한 인명 사고를 일으킨 사건과 관련하여 지역 주민들의 증언이 제시되었다. 마이즈루시는 과거 일본 해군과 현재 해상자위대가 활용해온 군항 중 하나였으며, 일제강점기 이후 조선인들이 참사를 겪은 지역이다. 일부 주민들은 도시마섬 주변에서 주검을 태운 뒤 매장했다는 증언을 했다. 이러한 새로운 증언은 일본 시민단체가 모은 '우키시마호 폭침 80년 보고서'를 통해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학생이나 어업 관련 종사자 등 주민들은 희생자 주검이 해병대 보트로 옮겨지는 것을 목격하거나 구조 작업 중 비명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일부 주민들은 주검이 사바카 마을 두 곳에 묻혔다는 기억을 전했다. 사건 발생 8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건의 원인과 조선인 탑승자 및 희생자 규모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아 진상 규명이 미진하다는 지적이 있다. 사건 당시 일본 정부는 전체 승선자 3735명 중 조선인 524명과 일본인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일부 증언을 바탕으로 전체 승선자가 7천여 명, 조선인 사망자가 3천~7천 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한, 폭파 원인에 대해 한국 측은 '의도적 폭침설'을 주장하는 반면 일본 정부는 '연합군 기뢰에 부딪혀 침몰했다'는 주장을 하며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주검 일부는 부산 영락공원 무연고자실이나 도쿄 사찰 유텐지에 보관된 상태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 정부가 승선자 명부 존재 자체를 부인하다가 나중에 인정하는 등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의구심이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