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마가’ 이념 확산 시도…‘비자유주의적’ 세계 꿈꾸나
미국이 중국과 전면적인 패권 경쟁을 일시 미루고 있는가?
중국은 이 문서의 19쪽에 가서야 등장한다. 트럼프 1기 때 국가안보전략이 중국을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반하는 세계질서를 형성하려는 수정주의 세력”이라 규정하며 선명한 강대국 경쟁을 선언했던 것에 비하면 중국 비중이 상당히 약화된 것이다. 중국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중국과의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 관계’ 정도로 표현된다. 그래서 일각에선 중국을 패권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경제적 경쟁자’ 정도로 인식 전환을 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중국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으나 중국과의 전략 경쟁을 염두에 둔 내용이 문서 곳곳에 포함돼 있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문서는 ‘힘을 통한 평화’를 천명하는데, 이는 냉전 시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과의 강대국 경쟁을 할 때 내세운 모토다. 군사적으로는 미국 본토에 ‘골든돔’이라는 차세대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구축할 의지를 밝혔다. 그간의 비약적인 군사기술 진전을 기반으로 레이건 시대의 ‘전략방위구상’(스타워즈)을 실행하겠다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다. 미국의 재정 여력 등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은 더 따져봐야겠지만 이것이 현실화할 경우 ‘상호확증파괴’를 기초로 한 중·러와의 핵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미국 자립경제를 표방했다. 문서는 “미국은 국가의 방위나 경제에 필수적인 핵심 요소들, 즉 원자재에서 부품,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어떤 외부 세력에도 의존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 또한 목표 달성 여부와는 별개로, 2015년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로 자립화에 나섰던 중국에 대한 맞대응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지역적으로는 아메리카대륙에서 중국의 영향력 배제에 나선 점, 아시아에선 대만·남중국해 방어 의지를 천명한 점이 눈에 띈다.
아울러 전략의 기본 원칙 중 하나로 ‘세력균형’을 제시하면서 “미국은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협력해, 전세계와 각 지역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지배적 적대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내용들을 고려하면, 미국이 중국과의 전면적인 패권 경쟁을 일시 미루고, 전략광물·전략산업·해군력 등 약점을 보완할 시간을 벌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예컨대, F-35 스텔스 전투기나 토마호크 미사일의 핵심 부품을 중국에 의존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전면적인 공세를 펼 수는 없을 것이다. 내년 4월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몇개월 앞둔 시점에서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이 문서가 요란한 수사를 동원하고 전통적 외교안보 문서에선 보기 힘든 ‘이단적’ 내용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음에도 미국이 당장 ‘고립주의’로 후퇴할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핵심 이익’을 규정한 항목을 보면, ‘서반구, 인도·태평양 지역, 유럽, 중동, 그리고 첨단기술(인공지능 등) 표준’을 핵심 이익이라 규정하고 “이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아시아·유럽·중동에서 발을 빼거나 전통적 동맹을 버리려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잦은 외국 분쟁 개입 실패와 막대한 재정적자·국가부채, 그리고 양극화 심화에 따른 내부 불만 누적 등으로 기존의 패권 전략 유지가 한계에 다다른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전략이 이민 문제와 마약 단속, 미국 본토 방어에 우선순위를 두고 동맹국의 분담 확대를 요구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특히 문제적인 건 이 전략이 새판짜기를 하려는 국제질서가 마가 이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가는 1960년대 흑인·소수자 등 민권운동의 결과로 얻어낸 민권시대 이전으로 미국을 되돌리려는 백인·복음주의 세력의 반동이다. 트럼프 집권으로 ‘비자유주의적’ 초강대국으로 변질된 미국이 중남미와 유럽의 권위주의적·극우적 정치세력을 지원·육성하는 데 적극 나서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밝힌 점이 불길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으로 확대될 것이다. 중남미 개입은 미국 본토로의 이민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백인 우위 구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며, 대유럽 전략은 주로 무슬림의 유럽 유입을 통제함으로써 백인·기독교 중심의 기존 대서양 동맹을 유지해보겠다는 시도로 읽힌다. 이런 움직임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시아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극우 세력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개입이 나타날 수 있다. 리스너 선임연구원은 “서반구에서 시작된 실험이 전세계로 확대돼, 금융 수단과 노골적인 선거 개입을 결합한 외교전략, 즉 미국의 힘을 이용해 ‘세계적 비자유주의 연합’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와 규칙에 기반해 구축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는 얘기다.
기존 국제질서는 파열음을 낼수록 세계는 더 불안하고 위험해진다.